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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일기

2013. 9.

by 린킨박 2022. 11. 4.

3.

어쩌면 들춰보지도 않을 책들을, 꾸역꾸역 가방에 구겨넣는 것은, 그저 지적 허영일지도 모른다. 
 
이야기하고, 마시고, 누워 자는 시간동안 각오를 새로히 다졌는가. 확신할 수 없다. 
 
날씨도 서늘해졌다. 
어쩐지 떠나기 아쉽다.
 
 
 
3.
일본엔 다진마늘이 없더라,는 말에 엄마는 말없이 마늘을 다졌다. 
 한 통 그득 담긴 마늘을 냉동실에 바로 넣어놓되, 먹기 편하게 봉지에 얇게 펴서 얼리라는 거듭된 충고에 마늘을 크린랩에 나누어 넣는다.
버스 정류장에서 왜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했나 후회하면서.
 
눈이 쓰리다.
 
 
 
 
 
 
그런데 엄마..
 
 
너무 많아..
마늘 아이스크림이라도 해먹어야 할 판이야..
 
 
 
5.
오랜만에 기숙사에 돌아와, 화장실 불을 켰는데 괴생물체가 재빠르게 바닥으로 숨어드는 것을 보았다.
안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형체를 확인하지는 못하였지만, 무지 컸다. (쥐 보다는 작았지만, 거미와 바퀴벌레보다는 훨씬 컸다)
속도 또한 상당했다...
 
 
문제는, 화장실에 발을 내딛기가 두렵다는 것.
머리 감을때마다 바닥으로 다시 기어나올 것만 같아...ㅠ
 
 
6.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하는군..
 
하루 날 잡아서 정주행을.
 
 
8.
병원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시 몇 수 외워두려 한 날들이 있었지.
머리가 나쁜지 금방 잊어버리더군.
 
 
 
9.
smap데뷔 기념일이라고 싱글 50곡 메들리를 라이브로 부르는 도전(?)을 하고 있다.
 
대단하다고 해야할까..
 
 
 
11.
 폐인 모드가 극에 달하고 있어,
정신 좀 차리려고 어제부터 자전거 밤산책을 하고있다.
살도 좀 빼려고 뜀박질도 조금씩 하고 있는데, 집에와서는 어김없이 한 잔(혹은 두 잔)
 
가을 기간한정 츄하이는 요거 두 개.
애용해야겠다.
 
 
 
12.
1.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걸 생활 패턴이라고 인정하면 될텐데, 그렇지 못하니 죄책감과 자괴감만 쌓여간다. 
나는 언제부터 늦게 자기 시작했나.
밤과 새벽은 나의 시간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면서 그 시간에 자는 것은 불안(만)이 되었다. 
허나 늦게 일어난 날은 늘 기분이 좋지 않다.
 
2. 갑자기 두 명이서 한 방을 쓰게 될 것 같다. 
어린 시절 사글세 방에서 네 식구가 다닥다닥 붙어서 산 이래, 코딱지만 했지만 내 방이란 건 있었다.(아...군대가 있구나)
가족이 같이 살아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다른 나라 사람하고 같이 살라니!! 
학교놈들...
이제 밤과 새벽은 내 시간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
 
3. 아, 짜증나.
 
 
18.
 돈을 잃어버렸다.
뽑자마자 없어졌다.
마트에서 신나게 음식을 사다가 돈 없어진걸 확인하고 하나하나 제자리로 가져다 놨다.
돈을 다시 뽑아 샌드위치를 사먹는다.
 
평소엔 라이터나 볼펜 하나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그런데 돈은 가끔 없어진다.
(노동에 대한 댓가가 아니라 그런건지 어떤건지 모르겠지만)
여행이나 할까했는데 일단 보류.
 
 
아무래도 부자 되긴 글렀나보다.
 
 
20.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명절 특집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늦게 일어나 해본적도 없는 전을 부쳤다. (츄하이에 곁들일만한 음식은 아니지만)
 
말해본 적 없는 기억도 떠오른다.
 
 
 
명절이구나.
에헤라디야.
 
 
24.
고등학생 시절, 판타지 소설을 읽을 때가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이야기가 뭔지 잘 몰랐고, 문장의 아름다움이나 균형 따위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 거북했던 유일한 소설이 있었는데, <하얀 로냐프 강>이라는 제목이었다. 
한 페이지에 "~리라"로 끝나는 문장이 10개도 넘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그렇게 거슬렸던지 읽다가 던져버렸다.  (확실친 않지만 기사도가 어쩌구 저쩌구하는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때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중세물'이라 불리는 이야기의 문법이나 화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왕좌의 게임>도 마찬가지인데, 이게 왜 이다지 인기가 있는지 이해가 잘 안된다. 
이들의 말은 길고 지루하며, 얍삽하거나 멍청하다. 
거의 모든 인물들이 '명예'니 '충성'이니 떠들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계속 보고있는건, 남아 도는(아니 그렇게 믿는) 내 시간 탓이다.
 
 
 
28.
숨어서 살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게 있다.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는 척만 하면 하고 있는 줄 안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감시와 눈치가 동력이었다.
"자발적으로"라는건 없었다.
(전혀 없었겠냐마는 느낌이 그렇다.)
 
이런 길로 들어온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겠지.
그런데 장막이 걷히고, 눈들이 사라진다. 
어딘지도,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두렵다.
 
해서, 더 숨는다.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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